수업 하다가 애들이 지루해할 때 썰 풀어주기로는 역시 귀신 이야기만한 게 없다.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귀신이 와서 듣고 있다고 하던데 그 귀신들이 아이들의 눈꺼풀을 확 들어올려주나보다. 평소에 하도 기억이 오래 가서 공포영화같은 건 볼 생각도 안 하는 나지만 <퇴마록>만큼은 한여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라고 기어코 나오자마자 읽어대던 중고생 시절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중학생땐 무협지도 많이 읽었지만판타지 소설이 대 유행이었고, 그와 함께 동네 책 대여점이 호황이었다. 특히 인기 있었던 것이 <드래곤 라자>, <가즈 나이트> 정도였던 것 같다. 다른 것도 많았겠지만 기억이 흐릿하다. 하지만 연령을 불문하고 책 대여점에서 가장 너덜너덜했던 책은 단연 <퇴마록>이었다. 국내편,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으로 이어지는 기나긴 이야기 속에 동서양의 신화, 종교, 주술, 마법, 초자연 현상 등등 온갖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다만 주인공 퇴마사 일행의 휴머니즘적인 면모가 그 무서움을 이기고 책을 읽어낼 수 있는 어둠 속 랜턴 같은 부분이었다. 그 이후로도 이 작가가 펴낸<왜란종결자>, <치우천왕기> 역시 한 권도 빼지 않고다 사서 읽었고 여전히 우리집 책꽂이에 꽂혀 있다. 언제든 다시 펴서 읽어도 처음 읽던 그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역사책 같은 존재가 되었다.지난주에 아내와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이 퇴마록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출간된지 제법 되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역시나 많이 빌려갔던 탓인지 국내편과 혼세편은 아예 없고, 세계편도 이가 빠져있고, 말세편 몇 권과 이 외전이 있었다. 외전이 나왔었다는 걸 내가 모르는 줄 알았는데 꺼내서 읽다보니, 이 책을 읽던 그 때가 머릿속에 다시 촥 펼쳐지는 것이 역시 이야기의 힘이란 대단하다 새삼 생각했다. 이 책은 주인공 현암, 박신부, 준후가 처음 만나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 현암과 승희의 안타까운 사랑, 준후가 학교 적응에 실패하고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 등, 소설이 뜻하지 않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면서 미처 다 살피지 못했던 주인공들의 과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로 치면 스핀오프랄까. 본편에 비해 덜 심각하고 덜 길지만 소식을 잊고 살던 정말 오랜 친구를 부담없이 만난 깊은 기쁨을 느꼈다. 한시간 남짓 걸려 다 읽고서 밀려드는 아쉬움에 말세편 끝부분을 다시 읽어보았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일행 중 가장 어린 준후를 제외하고는 모두 스스로를 희생하는 결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십년 넘게 정들었던 주인공들이 다 죽는다는 그 허무함과 안타까움에 일부러 오래 기억하지 않으려고 했었던가 보다. 아쉬워서 작가 이우혁 씨의 인터뷰를 몇 가지 검색을 하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퇴마록 외전>2권이 출간되어 있었다는 사실. 지난 방학에 만난 친구의 차에서 녹색 표지의 퇴마록 외전을 봤는데 그게 나는 판형이나 출판사만 바뀌었을 거라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그게 바로 2권이었던 것이다.(이 문장을 쓰고 보니 사건에 대해 그 숨겨진이면이나 그리 된 이유를 설명하는 이우혁 특유의 문체와 그문장에서 가장많이 사용되는 서술어가 것이다 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아마 내가구사하는 문장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게다가 책 소개를 보니 말세편 이후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니 사서 읽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국내편 서문에 작가가 이 비슷한 말을 써 두었던 것이 기억난다. 외국의 드라큘라, 좀비 그런 것 말고 우리가 시골 할머니댁 평상 위에서 모깃불 피워두고 듣던 귀신이야기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이다. 딱 좋을 때 다시 만났다. 귀신이야기는 역시 여름밤 아닌가.
퇴마록 출간 20주년, 그들이 돌아왔다! 출간 후 현재까지의 총 판매량이 1,000만 부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판타지 퇴마록 의 본편을 이루는 굵은 줄기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 퇴마록 외전 이 퇴마록 첫 출간 20주년을 맞아 출간된다. 퇴마록 외전 - 그들이 살아가는 법 은 본편의 주된 사건 이면에 있던 퇴마사들의 인간적인 면모나 생활상, 이야기와 이야기를 잇는 연결고리, 간략하게 언급만 되었을 뿐 구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과거, 퇴마사 주변의 등장인물들이 겪는 이야기 등의 다채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다. 시간적 흐름을 따르지 않는 중단편 위주의 옴니버스 작품집이다. 박 신부, 현암, 준후가 처음 모이고 난 후 처음 한데 생활하면서 겪는 이야기, 준후가 처음 학교에 갔을 때 겪은 일, 주기 선생이 독자적으로 벌이는 퇴마행, 현암과 승희의 아슬아슬 로맨스(?) 등 본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퇴마사들의 생활을 들여다볼 기회!
저자소개
이우혁 850만 부 판매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베스트셀러 퇴마록 으로 한국형 판타지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은 대중문학 대표 작가. 1965년 5월 18일 서울에서 태어난 후, 상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기계설계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대학 때부터 아마추어 연극, 뮤지컬 등에 깊은 관심을 보여 13편 이상의 극에 연출, 출연했으며, 하이텔 고전음악 동호회에서 한국 최초의 순수 아마추어 오페라 바스티앙과 바스티엔느를 각색, 연출하기도 했다. 1993년 종합 인터넷 서비스망인 하이텔에 퇴마록 을 연재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것에 힘입어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 850만 부 이상 판매되면서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한국소설의 기린아로 급부상했다. 현실과 역사를 기반으로 탁월한 상상력을 펼침으로써 큰 호응을 얻은 작가는 이후 파이로 매니악 왜란종결자 바이퍼케이션 등을 연이어 출간하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렸다. 2003년 중국의 역사왜곡에 반기를 들며 고대의 제왕 치우를 소설화한 치우천왕기 를 세상에 내놓으며 독보적인 역사관과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시하여 독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들이 살아가는 법
보이지 않는 적
준후의 학교 기행
짐 들어 주는 일
생령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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