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썩철썩. 소리만 놓고 보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하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멀쩡하던 나의 속은 서서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뱃멀미인지, 결국에는 반 즈음 탈진한 상태가 될 무렵 겨우겨우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고작 30분의 항해였다. 그 날 이후로 배에 오르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최근에야 대부분 다리가 놓였으니 차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몇몇 큰 섬의 경우 꾸벅꾸벅 졸다 보면 여기가 섬인지 육지인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이라 하면 느낄 수 있는 이유 모를 낭만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섬이 있다. 그냥 넋을 놓고 지도를 바라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수의 섬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도에 등장할 만큼의 크기를 자랑치 못하는 섬도 참 많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섬과 그렇지 않은 섬까지.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게 바로 섬의 태생적 매력이다. 저자는 많고 많은 섬들 중 일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역을 보니 여수시 광양시 보성군 고흥군 장흥군 강진군 그리고 해남군. 전라남도 일대라고 할 수 있었다. 무려 20년에 걸쳐 460여 개의 유인도를 오고 간 기록이라 한다. 호기심에 발을 디뎠다 순간 사라지기 바쁜 뜨내기 여행객들과는 차원이 다른 방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한때 화려했을지라도 지금은 한산하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도시로 자꾸만 사람이 몰리는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섬에서도 왔을 것이다. 각종 인프라 면에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섬 지역은 젊은이들의 발을 묶어둘 유인책이 많이 부족했다.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니 섬은 활력을 잃었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의 그림자만으로는 떠난 자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역부족이었다. 한때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재잘거렸다는 학교는 분교를 거쳐 폐교가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 창고로 전락해버린 그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있다면 가슴을 쥐어뜯을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또 한 가지 생각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소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섬들이 개발의 수순을 밟고 있는 듯했다. 개발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것은 바로 다리의 건설이었다. 아무래도 배를 타고 움직일 때보다는 이동의 편리성 부분에 있어 어마어마한 개선을 다리는 가능케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는 소외에 있다. 생긴 다리를 건너 들어온 것은 타지의 자본이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파헤쳤고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관광객이 많아진다 하여도 주민들이 부유해지진 못했다. 실제를 알지 못한 채 탁상공론을 펴니 그와 같은 정책이 나오는 것이라며 입을 내밀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품었던 기대감이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뒤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그냥 살던 방식대로 살 수만 있게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섬에는 희망이 있었다. 한때는 서로 경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믿을 사람은 함께 부대낀 이웃이었다. 그들은 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어업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온전히 주민들의 몫으로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어획활동으로부터 어장을 확실히 보호할 수도 있었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경우 육지와의 유일한 교통편일 배의 운영 등도 함께 했다. 물론 그럼으로써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유한 위치에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지금에서야 뒤늦게 인위적으로 공동체를 되찾겠다며 투쟁과도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도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비한다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신뢰가 섬에는 있었다.
가보지 못한 섬이 대다수였다. 아니, 이름조차도 낯설어 그 위치가 어딜지 가늠조차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막연히 지녀온 낭만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더욱 짙어졌다. 마음은 이미 섬 어딘가를 향했다. 일상에 얽매인 몸도 조만간 떠날 날이 올 것 같다.
파도와 바람으로 일상을 빚고, 소금과 김으로 역사를 꾸려온 한국의 섬!
21세기 섬 대동여지도 를 꿈꾸며 기획된 섬의 일상과 역사
한국의 3,300여 개 섬 가운데 460여 개 유인도를, 20여 년에 걸쳐 낱낱이 누비면서 기록한, 발로 쓴 장편 답사기이자 장대한 인문학적 보고서다. 고독과 고립의 공간인 섬에서 거역할 수 없는 사나운 바다와 거친 바람이라는 숙명적인 제약에 온몸으로 맞서며 미역줄기처럼 질기게 살아온 섬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의 역사와 일상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새로운 과거 혹은 오래된 미래로서의 섬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변모를 추적한 농축된 자료이기도 하다.
여수 엑스포를 맞이하여 첫 번째 권을 선보인 섬문화 답사기 여수, 고흥편은 총 8권으로 기획중인, 명실공히 ‘한국 섬총서’라 부를 만한 장중한 프로젝트의 서막을 열어젖히는 책이다. ‘숨 쉬는 바다, 살아 있는 연안’을 기치로 내건 여수 엑스포의 정신과도 잇닿아 있는 이 책은 ‘온고지신’, 과거를 돌아보며 21세기 섬이 품고 있는 새로운 가치를 일깨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일상과 비일상이 공존하는 섬의 과거와 현재를 씨줄로, 21세기 해양문화의 보고로서의 섬의 미래를 날줄로 촘촘하게 엮어냈을 뿐만 아니라 고전을 통해 섬의 기원까지를 탐색한 자료집으로 가치도 높다.
추천사 - 우리 민족의 향기로운 정신사 한 영역 | 한승원
지은이의 말 - 섬사람은 나의 스승이었다
1부 | 여수시 광양시
여수시 남면
1 숲과 바다가 풍요롭다 | 금오도
2 할머니 오래오래 사세요 | 수항도
3 아름다우면서 서러운 작은 섬 | 안도
4 부자섬이었다면 믿겠어요 | 부도
5 바다와 갱번이 희망이다 | 연도(소리도)
6 고기를 가두어 기르다 | 화태도
7 샛바람이 몹쓸바람이지라 | 대두라도
8 사람은 떠나는 섬, 당산나무는 외롭다 | 소두라도
9 사료가 비싸다고 굶길 수 없잖아요 | 나발도
10 은빛 멸치가 노니는 섬 | 대횡간도
11 세 척의 배, 세 채의 집, 그리고 세 부부 | 소횡간도
여수시 화정면
12 막걸리에 취하다 | 개도
벅수(장승)
13 바다에 징검다리를 놓다 | 월호도
14 꼼짝없이 잡혀 사는 ‘자봉도’ | 자봉도
15 어눌한 사람 삼 년만 이 섬에 살면 제대로 말을 한다? | 제도
16 육지가 된 섬, 이젠 무슨 꿈을 꿀까 | 백야도
17 부추꽃에 빠지다 | 하화도(아래꽃섬)
18 할머니는 꽃밭의 나비예요 | 상화도(웃꽃섬)
19 술도가 부부와 취하다 | 낭도
20 바다를 주고 공룡에 희망을 걸다 | 사도
21 사람발자국보다 공룡발자국이 더 많은 섬 | 추도
공룡들이 살던 땅, 한반도와 섬
22 삐틀이섬의 비애 | 조발도
23 작은 섬 하과도가 있어 사는 섬 | 둔병도
24 여자만의 황금어장 | 적금도
25 작은 섬마을 사람들 | 섬달천도
26 그 섬에는 아름다운 학교가 있다 | 대여자도
27 노인과 바다 | 소여자도(송여자도)
28 할머니 뱃사공, 웃음을 보다 | 운두도
여수시 삼산면
29 등대길, 너무 행복해서 죄스럽다 | 거문도-동도, 서도, 고도
[동아일보] 1928. 7. 22
30 풀섬에 바람이 분다 | 초도
고대구리어업(소형기선저인망어업)
31 전라좌수사 ‘마을신’이 되다 | 손죽도
안강망鮟鱇網
32 바람도 쉬어가는 손죽열도 | 광도, 평도, 소거문도
여수시
33 이제 ‘둠벙’이 되어 부렀어 | 송도(율촌)
34 전기가 없는 도시 속 섬 | 대륵도, 소륵도
35 코끼리를 귀양보내다 | 장도
순천왜성
36 그 많던 바지락 어디로 갔을까 | 묘도
37 오래된 미래 ‘섬과 바다’ 그리고 여수엑스포 | 오동도
여수만, 가막만, 순천만, 광양만
38 오복리 여자들은 돈이 안 아수워 | 대경도
39 도시에 작은 섬 | 소경도, 야도
40 한복 입은 여인에게 홀리다 | 돌산도
41 효자 일소와 농사 짓기 | 송도(군내리)
여수항
42 맘대로 담배필 수 있어 좋아 | 금죽도
43 모정의 뱃길, 삼만리 | 가장도
44 뭍에서 걸어 들어가는 섬 | 장도
광양시
45 섬에 제철공장이 들어오다 | 금호도
섬진강·광양만·광양제철
46 갯벌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 태인도
해태개량전습海苔改良傳習·김양식사
2부 |보성군 고흥군
보성군
47 사람보다 뻘배가 더 많은 섬 | 장도
꼬막을 맛있게 삶는 방법·참꼬막 보관방법
48 벌교꼬막 오리도 좋아한다? | 해도, 지주도
고흥군
49 당신들의 천국 | 소록도
대한민국 법정전염병·충절과 반역의 사잇길, 섬 아닌 섬 ‘녹도’
50 천국을 그리다 | 오마도
51 ‘굴밭’이 있어 행복하다 | 화도(상화도, 하화도)
52 자식처럼 요것만 껴안고 사요 | 시산도
임진왜란과 전라좌수영
53 암환자도 섬이 안는다 |득량도
바다는 생명을 품고 작가를 낳는다
54 임자, 소원이 뭐야 | 거금도
판소리 다섯 유파 특징
55 작은 미술관이 있어 아름다운 섬 | 연홍도
56 섬이 육지가 되면 좋을까? | 지죽도
57 김양식이 전부여 | 죽도
58 파시어촌에서 우주센터로 | 외나로도
59 갯벌에 희망을 걸다 | 내나로도
나로우주센터 및 국립청소년우주체험센터
60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들 | 사양도, 애도, 수락도
61 ‘해나리’ 일월명지 이름이 아름다운 섬 | 백일도, 진지도, 미덕도
62 가짜 섬과 진짜 섬 | 여도, 원주도
나로도어장羅老島漁場·나로도
63 가을전어, 사람만 좋아할까? | 취도
64 반은 육지, 반은 섬 | 우도
해창만과 해창만 간척사업
3부 |장흥군 강진군 해남군
장흥군
65 제주로 뱃길을 열다 | 노력도
66 소통, 물길은 열어야 한다 | 장재도
강진군
67 누굴 위한 다리일까? | 가우도
도암만과 남도답사1번지
해남군
68 김매는 섬, 어불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법 | 어불도
69 싸드락싸드락 사는 사람들 |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
70 명량대첩의 주인공 작은 섬, 섬사람들 | 임하도, 녹도
71 작지만 너른 바다를 품은 섬 | 시하도
시하도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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